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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by 다희올린 2024.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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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시대 정치

총독부를 중심으로 일본인들의 직접 통치가 이루어졌으며 이를 위해 각종 공직자, 경찰 등 약 20만 명 정도의 일본인들이 조선에 상주하였다. 동화주의를 표방하여 조선의 언어, 생활관습, 사고 등을 일본화하려 했으며 특히 1930년대 이후 동화주의는 본격 추진 되었다. 조선인들은 하급 관리, 하급 경찰로 임용되었고, 일부 부유층이 자문기구에 포섭되었으며 법, 특히 각종 악법을 통한 통치가 이루어졌다.

 

- 일제시대 경제 

토지조사 사업을 통해 토지 소유권의 근대법적 확인. 이를 통해 일인의 토지 소유를 법적으로 확실하게 보장하였고, 토지의 확실한 파악으로 총독부의 지세수입이 증대되었다.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을 통해 일본에 필요한 쌀들을 실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산미 증식계획을 통해 증산된 쌀보다 일본으로 추가로 실려간 쌀이 더 많았다. 조선인 빈민층은 만주에서 실려온 조를 주 식량으로 하였다.

산미 증식 계획의 과정에서 조선인 농민들은 더 몰락 (수세 부담, 지주의 토지 매수 확대, 고리대, 자연재해 등) 하고 화전민, 해외 이주민이 1920년대부터 크게 늘어났다.

1920년대 일부 일본자본이 조선에 투자되기 시작하여 1930년대 이후 본격화 되었다. 특히 북한지방에 집중되어 함경도 쪽에는 중화학공업화가 진행되었다. 

일본 -조선 - 만주를 포괄하는 일본경제권 내에서 분업의 차원에서 공업화가 조선 일부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 일제시대 사회, 문화

교육부문은 보통교육, 실업교육 중심이었으며 특히 보통교육은 일본어의 교육, 천황에 대한 충성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중일 전쟁 이후 더욱 심화되었다.

1930년대 후반. 일본어 해독능력자가 크게 증가하고 황국 신민교육의 효과도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병원은 총독부부속병원과 도립병원(자혜병원)이 있었으나, 일본인들을 위한 병원이었고, 조선인들의 이용률은 극히 낮았다 (언어 소통의 문제). 조선인들은 사립병원을 주로 이용하였다.

전염병 사망자의 수는 일제시기 내내 크게 줄어들지 않았고 위생경찰은 단속 위주의 방역활동을 했을 뿐, 치료는 거의 관계하지 못했고 예방 또한 마찬가지였다.

1920년대 이후 도시의 발달이 본격화되었지만 주로 개항장과 철도 연변 도시 중심이었고 1930년대 후반 이후 산업화와 관련된 도시들이 성장하였다.

도시화의 주역은 일본인들이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의 거주지역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거주구역을 구축하고 이중도시를 만들었으며 일본인들 거주구역에는 근대적인 시설들이 들어선 반면 조선인들 거주구역은 이에서 소외되었다.

경성과 같은 일부 도시에는 백화점 같은 자본주의적 소비문화가 들어왔고 일부 조선인들도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에 빠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시장을 이용하였다.

일본인들은 조선에 일본식 성매매 문화를 가져와 1920 , 30년대 전국의 주요 도시에 유곽, 창기를 비롯한 성매매 여성들이 급증하였다.

집회, 결사, 언론의 자유는 철저히 통제되었고, 문화정치 이후 다소 완화되었다고 하나 통제는 여전하였으며 특히 1930년대 이후 더욱 강하게 통제되었다. 1930년 중반 이후 대부분의 언론은 친일화 되었다.

 

 

- 결론 

식민지에서의 근대화란 정치의 측면에서는 직접지배, 동화주의, 억압적 통치기구와 법제의 도입으로 나타났고, 경제의 측면에서는 식민지로서 일본자본주의의 보완적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교육과 언론, 그리고 도시라는 거점을 통해 조선을 명실상부하게 일본화하는 작업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말하는 식민지에서의 인프라 확충, 1930년대의 공업화, 식량의 증산, 인구의 증가, 맨 파워의 성장 등은 표피적, 현상적인 것들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철도, 항만 등의 인프라는 주로 일본자본을 위한 것이었으며, 교육시설은 조선인들의 높은 교육열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고, 병원시설 또한 크게 부족했으며, 그나마 있는 것은 주로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다.

 식민지 조선에도 물론 근대가 시작되었고, 근대성이 나타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떠한 근대인가이다. 근대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며 다양하다. 제국의 근대와 식민지의 근대는 당연히 다르다. 같은 제국 내에서도 영국의 근대와 일본의 근대는 다르며, 같은 식민지 내에서도 인도의 근대와 조선의 근대는 다르다. 따라서 인도와 조선을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위험하다. 결국 조선에서의 근대는 식민지적 근대였으며, 그것은 일본자본주의, 일본제국주의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한 근대였을 뿐이다. 그렇다고 하여 조선인들이 그러한 요구에 전적으로 복종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식민지적 지배에 저항이 있었고, 일본적 근대의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에서의 근대는 '일본의 식민지로서 조선의 근대'라는 성격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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