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3년기의 역사
해방 3년기를 혼란의 역사로 이해하는 것은 4월 혁명기나 노동문제를 혼란으로만 이해하는 것과 비슷하게 편한 된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해방의 역사는 역동적 시기였다. 새 국가 새 사회 새 문화 새 경제를 창출하기 위해 역동적인 활동이 전개되었다. 해방이 되면서 한국인은 치안을 스스로 맡는 등 새 국가를 세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고 외세에 대해 주체적으로 대응하고 좌우합작으로 민족국가를 건설해 지정학적 특성을 최대한 한국에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활동을 끊임없이 하였다. 혼란은 친일파의 대두, 특히 친일경찰의 등용과 미군정의 한국현실에 대한 어두움, 실정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관계가 깊은데 좌우대립은 외세와 결합되어 있는 극좌. 극우의 정치적 싸움에 의해 증폭되었다. 신탁통치문제에 대해서는 모스크바삼상결의의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김구. 이승만. 한민당의 반탁투쟁과 김규식 여운형의 임시정부건립 후반탁, 남북공산주의자들의 모스크바결의 지지의 정치적 성격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반탁투쟁의 경우도 시기에 따라서 다르지만 김구의 반탁투쟁과 이승만. 한민당의 반탁투쟁이 다르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미국의 대한정책이 시기에 따라 어떻게 다른가도 객관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미국은 소련과 협의하여 임시정부를 수립하고자 하였으며, 좌우합작운동을 지원했고, 제2차 미소공위가 공전될 무렵 단정 수립으로 기울었다. 한국의 분단 또는 정부수립은 미소가 세계적 차원에서 대립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초래되었다.
- 이승만 정부시기
한국전쟁과 관련해서 배경에 대한 탐구가 중요하며 엄청난 희생자를 내게 된 요인과 민간인 대량 희색의 과정을 알 필요가 있다. 전쟁이 남과 북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에 미친 영향도 중요하다.
1948년 남과 북의 정부수립과정, 5.10 선거의 역사적 의의와 분단의 문제, 친일파처단문제 등이 중요하다. 농지개혁의 역사적 의미도 사실을 바탕으로 중요시될 필요가 있다.
1950년대 60년대 남한사회의 아주 큰 특징은 평등화 평준화였다. 일제강점기, 해방 후의 혁명적 상황, 농지개혁, 전쟁 등을 통하여 형성된 평준화는 교육의 확대와 함께 고도성장의 기본적인 힘이 되었다. 그러나 평준화는 하향 저질평준화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문제가 있었다.
- 4월 혁명기 박정희정권시기
박정희정권과 관련해서는 군정기 민정기 유신체 제기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중요하고, 한일회담의 과정, 한일협정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경제성장의 원동력 또는 배경에 대한 이해, 새마을운동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이해가 논란의 대상이 된다. 경제는 1956년 7년경부터 건선위주 성장 위주의 발전추세를 갖게 되지만, 1960년대 후반에 많은 기복이 있었고 1980년대 말까지 큰 규모로 성장을 하게 된 것은 국내외적 요건이 기본적인 역할을 하였다. 60년대에는 자본주의가 세계적 규모로 발전하였는데, 특히 남유럽국가와 동남아에서 고도성장이 이루이진 것도 주목하여야 한다.
4월 혁명을 왜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었는지 그 이후의 향방과 관련해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혼란이라고 부르는 이 시기에 실상은 어떠하였는지 이 시기에 광범위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조정 활동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경제발전의 국내적 요인
- 농지개혁, 평준화현상과 교육열풍, 전쟁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노동력의 근면성, 테크노크라트의 형성과 기업인,
박정희정부 등 역대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
* 경제 발전의 국외적 조건
- 자본주의국가의 동시발전과 서독 일본의 자금 여유, 미국의 대공산정책의 변화와 한일국교정상화, 베트남전쟁과 파병,
미국의 시장과 기술, 개발독재와 정치혼란의 문제
사회적 문화적인 면으로 놀라운 변화가 한국인의 의식과 생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도시화, 연료나 의복, 주택, 교통망의 변화, 라디오, TV의 보급이 정치 문화 등에 미친 영향, 대중음악이나 영화를 통해서 바라본 현대사 교육 등 여러 방면으로의 변화성이 교육되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