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화 '택시 운전사'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전 이야기 1979년 10월 26일 갬재규가 박정희를 암살했습니다. 이 일을 영화로 만든 것이 '남산의 부장들'이었습니다. 나라의 권력 핵심인물 원, 투, 쓰리가 한 번에 사라졌으니 당연히 다음 순서는 계엄령의 선포였습니다. 계엄령이 선포되니 군인들의 세상이 찾아왔고,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은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전두환은 실권을 장악했지만 독재정권 박정희가 물러가고 민주주의가 펼쳐질 거라 희망했던 시민들은 군부정권의 지배를 받을 생각이 없었고 이를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2017년 8월 2일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로 알려졌고 많은 사..

2023년 11월 22일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에서 보았던 전두환과 노태우가 중심이 되어 군사반란을 일으켜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꾸었던 1979년 12월 12일의 이야기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12.12 군사반란의 배경 12.12 군사쿠데타는 대한민국의 국내 정치사건 중 하나로, 1979년 12월 12일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정권을 선포하고,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뒤 권력을 장악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뒤 최규하 과도정부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하였습니다. 최규하는 이때 결정적인 실수를 하게 되었는데 전국 계엄이 아닌 제주도를 제외한 부분 계엄을 선언한 것은 ..

-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 배경 한국 현대사의 중추적인 인물인 박정희는 1963년부터 1979년 암살될 때까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그의 리더십은 경제 발전과 산업화, 확고한 권위주의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 임기동안 논란과 반대가 없지는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 궁정동 암살사건 또는 10. 26 사건이라 부르는 이 사건은 1979년 10월 26일에 대한민국의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박선호, 박흥주 및 안가 경비원들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고, 차지철 경호실장, 정인형 대통령 경호처장, 안재송 대통령 경호부처장, 김용섭 대통령 경호관, 김용태 대통령 경호실 차랑 운행계장 등을 살해한 사건이다. 김재규의 행동 이면에는 복잡한 동기가 있었으며 개인적 불만과 정치적 불만이 복..

- 유신헌법 - 유신헌법 과정 1969년 3선 개헌 당시부터 역설적으로 그가 3선에 그치지 않으리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의혹은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 기간에 더욱 짙어졌다. 김대중 신민당 후보는 전주 유세에서 정권이 종신총통제를 획책하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였고, 서울대 총장을 지낸 법대교수 유기천이 강의 중에 그가 대만에 갔을 때 한국에서 총통제를 연구하러 온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는 말을 한 것도 같은 시기였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추진한 실질적인 이유는 1970년 전후 국내의 혼란과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 김대중을 근소한 표차이로 이겼기에 재집권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유신헌법 공포의 표면적 이유는 남북 대화 뒷받침과 급변하는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

- 박정희 대통령 당선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의 5대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이다. 1963년 10월 15일에 직접 선거 방식으로 치러졌다. 본 선거에서 미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가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63년 12월 17일 제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한국의 세 번째 공화 헌정 체제인 제3공화국이 출범했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정변 주도세력이 만든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장악한 최고 통치기구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 실시된 군정 1년 7개월 만에 박정희는 합법적으로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 박정희는 1963년 12월 17일 취임했으므로 4년 뒤인 1967년 12월 16일 제5대 대통령으로서의 임기..

- 5.16 군사정변 배경 5.16 군사정변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비롯한 대한민국 육군 장교들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즉각 정부를 장악하고 '군사혁명위원회'를 만들어 반공을 국시로 삼는다는 '혁명 공약'을 발표했다. 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한 것이다. 이 쿠데타로 제2공화국의 장면 내각은 출범 9개월 만에 무너졌고 박정희를 수반으로 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등장하였다. '5.16 혁명' 또는 '5.16 군사혁명'이 '쿠데타' 또는 '군사정변'이라는 올바른 명칭을 갖게 된 것은 한 세대가 흐른 뒤였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펼치면서 '사월혁명'과 '5.16 쿠데타'를 복원한 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