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10년대 재미교포 러시아한인의 민족운동 전개 - 권업회의 조직과 활동 권업회는 1911년 12월 1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조직된 연해주 지녁 재러한인의 권익 옹호기관이자 옥립운동 단체였다. 지금까지 연해주 지녁 한인 전체를 대표하는 기구가 없었던 점을 상기해 볼 때 이 단체의 설립은 한인 독립운동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전에는 함경도파, 평안도파, 서울파 등으로 또는 토착세력, 외부이입세력 등으로 나누어져 각각 군소단체들이 난립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단체들은 일제의 조선 강점, 러시아의 대한인정책의 변화 등에 발맞추어 하나의 단체로 뭉치게 되었던 것이다. 권업회는 조국이 일제에 의하여 강점된 상황하에서 망국민에 의하여 해외에서 조직된 단체라는 기..

-재미교포 러시아 한인 투쟁 1860년대 초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기 시작한 한인들은 1930년대에는 2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많은 수로 증가하였다. 이들 재러동포들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이 일본에 의하여 강탈당하자 국권의 회복을 위하여 가열찬 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1910년 일제에 의하여 조국이 강점당하자 로시아 전역에서 더욱 적극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구한말부터 1922년까지 재러동포들이 전개한 이러한 항일투쟁은 1945년 8월 해방에 밑거름이 되었으며 오늘날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 조선말기에서 대한제국 까지 의병운동과 계몽운동 - 의병운동 일본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였다. 아울러 1907년 6월에 헤이그에서..

- 일제시대 정치 총독부를 중심으로 일본인들의 직접 통치가 이루어졌으며 이를 위해 각종 공직자, 경찰 등 약 20만 명 정도의 일본인들이 조선에 상주하였다. 동화주의를 표방하여 조선의 언어, 생활관습, 사고 등을 일본화하려 했으며 특히 1930년대 이후 동화주의는 본격 추진 되었다. 조선인들은 하급 관리, 하급 경찰로 임용되었고, 일부 부유층이 자문기구에 포섭되었으며 법, 특히 각종 악법을 통한 통치가 이루어졌다. - 일제시대 경제 토지조사 사업을 통해 토지 소유권의 근대법적 확인. 이를 통해 일인의 토지 소유를 법적으로 확실하게 보장하였고, 토지의 확실한 파악으로 총독부의 지세수입이 증대되었다.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을 통해 일본에 필요한 쌀들을 실어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산미 증식계획을 통해 증..

- 일본 식민지 시기 철도 조선 철도의 현황 1899년 경인철도 개통 당시 선로 연장은 30km에 불과했으나 1930년 12월에는 2,770km로 31년 만에 거의 100배에 달하였다. 식민지 시기 국유철도의 영업 km는 1910년과 비교할 때, 1944년에 4.62배, 정거장 수는 1910년과 비교하여 1942년에 6.7배, 종업원 수는 1910년과 비교하면 1944년에 8.8배가 늘었다. 한편 사설 철도는 1910년대의 경 편철도 부설 붐에 의해 시작되어 1차 대전기의 호황으로 박차가 가해졌다. 1914년 조선 총독부는 교부금 제도를 설치했고, 1921년 일본 정부는 '조선 사설 철도 보조법'을 공포하는 등 조선 내 사철의 보호육성에 노력했다. 그리하여 사철의 노선망도 급속히 확대되었다. 영업 km는..

- 일본통치시대 교육 식민지 시기 보통학교 취학률의 변동은 4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기는 1912년부터 1919년까지로 취학률이 정체되어 있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조선인의 교육에 대한 태도가 보통학교에 대학 저항과 서당교육 지향으로 특징 지워진다. 제2기는 1920년부터 1923년까지로 취학률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시기이다. 3.1 운동 이후 총독부가 이른바 3면 1 교제를 앞당겨 실시한 시기와 일치한다. 1922년까지 전국적으로 3면에 1개교씩 학교가 세워졌기 때문에 취학기회가 늘어난 것이다. 제3기는 1924년부터 1931년까지 이다. 이 시기의 취학률의 상승추세는 주춤한다. 이 시기는 다시 그 안에서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1924년부터 1928년까지로 총독부가 3면 1..

- 일제강점기 식민지시기 인구 변화 추세 (1910-1945) 일본인 인구 - 일제 말기에 약 70만. 1910년대 초에 가장 많이 이주. 1919,1920년 콜레라 유행기에 저조. 이후 거의 비슷한 수의 일본인이 조선에 이주. 조선인의 직업별 인구 구성은 1910년대만 해도 농업이 85%로 압도적이며, 상업, 교통업이 뒤를 이었다. 타 직업은 극히 미미 하였지만 1942년에는 농업이 68%로 줄어들고, 상업, 교통업이 8% , 광업이 2%를 차지하였다. 기타도 3%에서 9%로 늘어났다. 이는 1930년대 이후의 공업화의 진전에 따른 결과이다. 일본인 인구의 직업구성을 보면, 1917년과 비교할 때 1942년에는 공무자유업이 13%가량 증가했으며 전체적으로도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상업, 교통업은 ..